그 날

2009. 9. 11. 01:32 from 교양

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보도에 고인 물이 햇빛을 튕기어 나뭇잎이 반짝이던 오후였어요


어깨를 세우고는 우아하게 워킹하며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강아지와 
재잘재잘 함박웃음을 폭죽마냥 거리 곳곳에 터트리는 아가씨들,
지구를 어깨에 한 짐 지고 발 끝만 응시하며 걸어가는 소년들과
목마른 듯 소주를 들이키다 얼굴이 불콰해진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회랑같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지요  


스카이 라운지 커피숍의 가장자리 딱딱한 쇼파에 앉아,
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그런데 그만 나는 혓바늘이 돋아서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소파에 기대어 잔뜩 움츠러들었지요
방석과 등받이 사이의 깊은 틈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어요


당신은 손을 달라 했다가
그 다음은 입술을 달라 했어요
그리고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심장을 움켜지곤 한 입에 삼켜버렸지요
그날 이후 나는
시름시름 앓게 되었어요


어디든 벚꽃이 만발하던 날이었어요
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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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rl.Je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