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보도에 고인 물이 햇빛을 튕기어 나뭇잎이 반짝이던 오후였어요
어깨를 세우고는 우아하게 워킹하며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강아지와
재잘재잘 함박웃음을 폭죽마냥 거리 곳곳에 터트리는 아가씨들,
지구를 어깨에 한 짐 지고 발 끝만 응시하며 걸어가는 소년들과
목마른 듯 소주를 들이키다 얼굴이 불콰해진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회랑같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지요
스카이 라운지 커피숍의 가장자리 딱딱한 쇼파에 앉아,
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그런데 그만 나는 혓바늘이 돋아서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소파에 기대어 잔뜩 움츠러들었지요
방석과 등받이 사이의 깊은 틈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어요
당신은 손을 달라 했다가
그 다음은 입술을 달라 했어요
그리고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심장을 움켜지곤 한 입에 삼켜버렸지요
그날 이후 나는
시름시름 앓게 되었어요
어디든 벚꽃이 만발하던 날이었어요
당신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지요
'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은 그대 쪽으로 (1) | 2009.09.17 |
---|---|
사랑과 상처, 혹은 추억 (3) | 2009.09.14 |
운명 (0) | 2009.09.06 |
나무 (1) | 2009.09.01 |
회상 (1) | 2009.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