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들의 두뇌가 이해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체험하는 세상은 나의 두뇌로 인해 한정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같이 보는 외부세계가 실재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우리들은 그곳에 나의 마음을 투사하며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마음의 투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반영으로 일시적으로 드러난 현상입니다.
누군가 죽도록 밉고 화가 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외부세계는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며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래 개인적으로 자주 체험하는 일 중에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시간중 일부를 체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 그리고 주변의 상황이 마치 현실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장자의 호접지몽과 같이 그 사람이 나인지 아니면 내가 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깊은 몰입의 상태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오직 그 사람만이 존재하며,
깨어난 후에는 잠시간 나와 그 사람의 존재성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그 순간 나의 체험 속에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유럽을 여행하는 꿈을 꾸다 일어나보니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나의 현실은 변화합니다.
개인이 체험하는 세상과 자아의 동일성이 이와 같이 분명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면
인류가 체험하는 세상은 어떨까요?
우리들이 모두 함께 공유하는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 세상의 모습은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렇게 보여지는 것이고
다른 생명들에게는 또 다르게 보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색깔 정도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습 자체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 생물이 아닌 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세상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기본적으로 이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 메트릭스와 같이 견고한 모습의 세상이 실제로는 환영이라 하여도
우리들이 이곳에 소속되어 살아감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과제는 바로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속의 일들인 것입니다.
나는 세상은 우리들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마음이 아닌, 굉장히 깊은 수준의 마음까지 포괄하며,
우리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이 그 모습을 비추어준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보고싶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나의 존재성 자체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여기에는 수의적으로 선택하였는지 불수의적으로 선택하였는지의 차이점이 있고,
일반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작용력들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할 뿐이라 여깁니다.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좋아지는 선택을 하거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심장이 뛰며 살아가지만
그 추동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삶에 어렵고 힘든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그곳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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