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쪽빛이고 마당은 환하다.
햇병아리 몇 마리가 무언가를 콕콕 찍고
토방의 늙은 개가 그걸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세상 살며
바람에 꾸벅이는 제비꽃이나
처마 밑에 떨어진 참새 주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아진다. 담 너머 대숲의
고요 모르는 수런거림과
사립 옆 윤기나는 감나무 잎의
반짝거림에, 한때는 목숨이라도 걸 듯
그리움과 노여움을 옹호하기도 했던 것이다.
먹이 모자라던 까치 지난 겨울엔
개밥그덩에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더니
그 까치 시방은 마당을 차고 오르며
흰 무늬 날개 활짝 펴서 대숲 위를 나닌다.
그 부신 꿈의 비상엔 언제나
차고 오를 마당과 몇 알의 밥알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시방 생의 어디쯤
어슬렁거리며 날갯짓 해보는 것인가.
마당은 환하고 불혹은 눈앞이다.
헛간의 녹슨 경운기와 담장 밑의 풀덤불이
세월을 가르치고, 장독대의 곰삭은 옹기들은
미륵불처럼 처연하다. 서러운 것들의
모든 가슴이 미륵불 되면 좋으련만
아직도 외양간의 부사리는 영각을 쓰며
마당을 한바탕 뒤흔드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 사랑을 부르는 소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마당 귀퉁이의 참배꽃은 펄펄
져내리고, 나는 목이 메이는 것도 지쳐
물끄러미 생의 안마당을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우편배달부는 늘 늦는 것이다.
고재종 詩集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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