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Steve Jobs의 Stanford 대학교 졸업식 축사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그렇습니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Reed 대학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가 그 후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제가 왜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그 이유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 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이 준비된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마음을 바꾸어 여자 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저의 친어머니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 이유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몇 개월 후,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교육을 시키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 후, 저는 정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어리석게도 Stanford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제 학비로 써야 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인생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가 없던 필수과목 대신 관심 있는 다른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저는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면서, 음식을 사기 위해 코카콜라 빈 병을 팔아서 5센트씩 모으고, 매주 일요일 밤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매우 맛있었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모두 아름다운 서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저는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Serif체와 San Serif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으며 예술적인 것이었고,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는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베낀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놀라운 서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등 그 무엇이든 신념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며, 오히려 제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로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Steve Wozniak과 함께 애플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되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어떻게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될 수 있을까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우리는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였고, 처음 1년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John Scully를 지지했고, 그렇게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이죠.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의 인생에서 초점을 맞추어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고, 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통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 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저는 Packard(HP의 공동 창업자)와 Noyce(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서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였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되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성공에 대한 부담은, 모든 것에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 가벼움은 저를 자유롭게 해주었고,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Pixar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Toy Story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Laurene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중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그런 약이 필요한 환자도 있나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인생이란 가끔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 나왔다고 믿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 또한 그렇습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여러분이 하는 일은 당신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주저앉지 마세요. 언젠가 그것을 발견하게 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십시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올바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그 말에 깊이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그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면 한다면,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마음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 당시에 저는 췌장이란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말의 의미는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야 할 것들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주어야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또한 임종 시에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습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리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가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십 년간은 죽음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천국에 가기 위해 당장 죽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신경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여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당신의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 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Menlo Park에 사는 Stewart Brand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그 책이 나온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말하자면 종이 책으로 된 Google 같은 것인데, Google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Stewart와 친구들은 여러 번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으로,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습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항상 우직하라.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며 그리고 항상 우직하게.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항상 우직하라.
Thank you all very much.
매우 감사합니다.